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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인희의세상보기] 건강한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 기사출처: 세계일보 ) 2019-08-08

[함인희의세상보기] 건강한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다문화 자녀 사회 진출 본격화 / 직장 내 조롱·폄훼 다반사 실정 / 선진국 실패 사례 답습 안 돼 / 사회구성원 ‘인정’ 교육 나서야

 

일전에 기업의 여성 중간관리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접 들은 실화다. 자신은 대기업 유통 부문 현장의 인력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 다문화가족 출신 자녀의 입사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데 동료나 선후배들이 다문화가족 출신 직원을 부를 때, 믿기지 않겠지만, ‘어이! 다문화’라고 칭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개인적 민망함은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충이 크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다문화가족 인구 추정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74만3400여명 규모에서 2030년이 되면 121만5100여명 규모로 증가하고, 2050년에 이르면 그 숫자가 216만여명을 웃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 자료도 주목할 만하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0년 12월 기준 다문화가족 자녀 중 만 19세가 된 사례가 350여명인데, 이 중 징병검사를 받은 후 100여명이 복무 중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 출신 징병검사 대상자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하리란 추계도 나와 있다. 실제로 2017~2022년 사이에는 약 1만5000명이 대상자가 될 것이요, 2023~2028년 기간에는 약 4만명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초저출산 사회임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제 다문화가족의 자녀 세대가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는 시기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조만간 군복 입은 다문화가족의 아들을 만날 것이요, 우리 자녀의 담임선생님이 된 다문화가족의 딸도 만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어이! 다문화’라는 호칭이 통용되고 있다니, 우리 모두의 깊은 반성이 필요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2년여 전 현장조사 과정에서 만났던 베트남 며느리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에겐 딸이 둘 있는데 특별히 맏딸에게 베트남식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했다. 아빠의 성(姓)이 전씨이니 딸의 공식 이름은 전트린. 굳이 베트남식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엄마가 베트남에서 왔다는 사실을 자신의 딸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고 했다. 딸의 이름을 부르며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랠 수 있음은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트린 엄마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파심에 내가 던진 질문은 “혹시 트린이가 베트남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면 어떡하지요”였다. 어리석은 질문에 트린 엄마는 지혜로운 답을 들려주었다. “저는 트린이란 이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름 때문에 제 딸을 놀리는 친구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깊은 반성을 하도록 해준 이야기였다.

미국의 교육학자 네이선 글레이저의 책 ‘우리는 이제 모두 다문화인이다’에는 일찍이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다문화사회를 표방해온 미국에서조차,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교육의 측면에서 세밀하게 조망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및 교과서 내용 속에 백인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다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논쟁과 갈등이 촉발됐는지가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단 과정상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은 이질적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훈련을 수행함에 매우 유용한 도구라 결론짓고 있다.

글레이저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다문화 교육의 대상은 이민자들이 아니라 바로 사회구성원 모두라는 주장이었다. 곧 다문화가족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준 수용국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는 교육 못지않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민자 집단을 진정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근거 없는 편견과 불합리한 차별 없이 유연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문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타문화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대상은 바로 사회적 다수집단인 ‘우리’임을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다문화 교육의 내용을 둘러싸고는 교육의 주도권을 지닌 집단과 주요한 의사결정 및 영향력으로부터 배제된 소수집단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이어져 왔다. 이로 인해 이민자 집단에 대한 적대감이나 증오심이 증폭되기도 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과도한 폄훼가 사회문제로 부상하기도 했다.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에 발목을 잡았던 시행착오가 타산지석이 돼주기보다, 우리 내부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음은 진정 유감이다.

최근 미디어에는 베트남 출신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의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고, 이주 노동자가 ‘괴롭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장을 담은 동영상도 국가 간 미묘한 신경전으로 비화할 만큼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이제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본격적인 사회진출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아직도 결혼이주가 시작되던 1990년대 초반 당시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30년 가까이 경험해온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에서 아무런 교훈도 축적하지 못한 채 선진국의 시행착오나 실패를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지, 향후 다문화 이슈가 진정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됨으로써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요즘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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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055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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